[소식지] 더불어숲 통(通) 39호_14,15,16,17,18,19,20,21/21

아카이브가 만난 인연

 

 

황철우  서울교통공사 노조 사무처장, ()더불어숲 이사

 

- 신영복 선생님은 어떻게 만나시게 되었는지요?

 

1999 ‘4.19 파업이라고 서울지하철이 파업을 크게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중앙 간부로 있으면서 파업에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조합원들 독려하다보니 수배, 구속까지 되었거든요. IMF 구조조정이 한창이었잖아요. 그때 서울 지하철도 3천 명 정도 줄이겠다고 하니까 노조가 싸울 수밖에 없었죠. 그 후 해고자가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재충전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2000년도에 노동대학이 처음 개설되었어요.

그전에는 신영복 선생님을 책으로 알고, 강사로만 뵈었죠. 저희 노조에서 교육할 때 초대하면 꼭 오셔서 관계론 강의하시고, 그런 강의를 되게 잘하셨어요.

노동대학을 선생님이 개설하니까 너무 좋았고 취지도 좋았지요그 무렵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었어요. 그런데 노동대학이란 이름으로 돌파구를 만드는 느낌이 들어서 저도 1기로 들어갔죠. 그때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그 당시 열기가 대단해서 부산에 있는 한진중공업 노조원들도 올라왔었어요. 전국 곳곳에서. 선생님과의 인연을 만들려는 것도 있고 시기적으로 노동자들이 학습하고 재정비하자 이런 것들이 어필되었기에  만났던 거죠.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 있나요?

 

사실 처음엔 선생님을 좀 먼 분으로 느끼잖아요. 다가서기가 쉽지 않죠. 선생님이 노동대학 학장으로서 맨 첫 강의를 하셨고 체육대회, 산행할 때 먼 거리에서 만났어요. 처음에 선생님이랑 말을 섞는다는 게 되게 조심스러웠어요. 말 한번 나누면 뭔가 통했다하는 그런 마음이 처음 느낌이었고요. 선생님께서 노동대학 과정을 잘 챙기시려고 노력하셨어요. 학장으로 명함만 있는 게 아니라 학생들 특히 현장에서 투쟁하는 해고자나 이런 분들을 잘 챙기셨어요. 알게 모르게 챙겨주시고 관계를 이어주시고 뒤풀이 자리에도 오시고. 조금씩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 새록새록했죠.

 

선생님과 개인적인 일은요, 제 주례를 보셨어요. 노동대학 2년 과정을 다 마치고 졸업한다는 것이 되게 의미가 있었죠. 다들 어려움 중에 활동하면서 졸업하니까 뿌듯했죠. 열댓 명이 모여 선생님과 함께 뒤풀이 하는 중에 앞으로 뭐할까? 심화학습을 하자 이런 얘기가 되니까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대학원 만들자 이러시는 거예요. 그렇게 노동대학원을 만들어서 선생님이랑 처음 자본론을 같이 공부했어요. 6개월 심화과정. 1년 심화과정인데 6개월 과정을 선생님이랑 공부하는 그게 좋았어요. 선생님도 노동자들이랑 학습하고 호흡하는 걸 되게 좋아하셨고. 같이 땅탁구하는 거, 같이 산행하며 부대끼는 모든 것이  좋았죠.

결정적으로 제가 노동대학 1기 졸업생인데 아내도 1기 졸업생으로 같이 결혼한다고 하니까 더더욱 좋아하시고, 말도 하기 전에 본인이 주례 보겠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아내 쪽 하객들은 제가 해고자인지 전혀 몰랐어요. 결혼 승낙 받는 게 정말 힘들었죠. 상식적으로 해고자랑 결혼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요. 다행히 집안 어른 한 분이 역할을 해줘서 어렵게 승낙을 받아 가족들만 제가 해고자인 걸 알았어요

그런 얘기는 선생님께 말씀 안 드렸죠. 근데 주례사 중 글귀를 딱 보여주면서 황철우 군은 서울지하철 노조 해고자로서하는 순간에 웅성웅성. 장인, 장모님은 사색이 되고 아내도 마찬가지고.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례사가 무슨 말씀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신혼여행 가서 수습대책회의 했어요.ㅎㅎ 설마 그렇게 말씀하실지 몰랐죠

선생님은 노동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 결혼한다는 게 너무 좋았고. 해고자까지만 나가도 좋은데, ‘앞으로 황철우 군은 지하철노조를 열심히 할이라고 전망까지 제시해주셔서 제가 아직까지 노조운동을 하고 있잖아요.^^

 

-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관계론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요?

 

관계론 자체가 처음에는 익숙지 않죠근데 스며드는 것들이 있잖아요범접하기 어려운 분이지만 때로는 편하게 다가서고 모르는  같지만 소소하게 챙기는 이런 모습들이 스며드니까 노동대학 1기가 시작되면서 ‘느티나무라는 동문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이어나가는 모임을 구성하게 된 거죠그 동문회가 유지되면서 이주노동자 지원 사업, 노동대학 학비 지원 장학사업도 하고. 그러한 관계를 맺기 위한 토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좋아요노동계에서 20 동안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거든요노동대학의 뿌리로서 동문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관계의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좋은 계기가  거죠.

그리고 활동하고 노동하는데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 힘들어요사실동지들끼리 수없이 싸우고 부딪치고 증오의 맘이 들기도 한데 이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선생님을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잖아요하지만 그런 것을 개선하고  스스로 일깨울  있는 지침, 계기가 되었지요

 

- 좋아하는 서화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 작품은 이것입니다.

(수풀림  모인 )

이게 한문 같지만 한문이 아니고 한문과 한글이 같이 있는 거다.’ 주시면서 설명을 해주셨어요. 뜻도 너무 좋잖아요. 글귀도 다 아는 글귀지만 이렇게 구성한 것도 좋고. 졸업   받아서 집 제일 좋은 곳에 걸어놓고 있죠.

 

(더불어 한길)

이건 결혼식  사단이   펼쳐 보여주신 거예요. 글귀도 되게 좋은 거죠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거니까

 

선생님과의 인연의 관점이 중요해요작품만 보는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만난 에피소드요.

선생님께서 돌아가실 무렵에 노동대학도 찾아갔죠.  선생님 손을 꽉꽉 잡았죠그때 류방상 선배, 조태욱 선배 이렇게 갔죠눈빛만 확인하고 손에 힘만 확인하는 그런 과정이었어요

그때 공히 느꼈던 거는 우리 사회 노동의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애착을 가지고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사회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우리가 갔을  눈빛으로 마음으로 확인했던 과정이 있었어요.

아카이브 같은 작업을 할 때 작품이나 인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관계 속에서 맺었던 철학의 문제, 지향의 문제를 찾아보고 발굴해서, 관계와 철학적 사고에 대해 선생님이 무엇을 고민하고 계셨는지, 어떻게 소통했는지를 발굴해서 후세에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선생님의 가르침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요?

 

선생님께선 딱 시간되면 오셨어요. 그때가 1997~98년 경동교회에서 운수노동자학교가 있었어요. 그때 섭외해서 처음 오셔서 한 강의 내용을 지금도 기억하고 담고 살고 있어요.

'한 발 앞서' 이런 얘기. 당신들 노조 간부고 이러니까 혼자 열심히 뛰어 혼자 하지 말고 한 발 앞서서 가라. 뒤처지지도 말고 너무 앞서지도 말고 그러면서 조합원들과 함께 시민들과 함께 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많은 강의 속에 제 머리에 담고 있는 거는 '한 발만

앞서면서 실천해라.'입니다.

 

문재인정부는 행정 권력만 잠시 잡은 거예요.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고. 이 나머지 사법 권력도 여전하고 자본권력은 분명하기 때문에. 문재인정권의 한계가 분명하잖아요너무 아쉽죠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영장 발부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나 그것은 권력자의 의지로만 되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체제의 문제니까. 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아닌 게 있지요. 그래서 여전히 노동은 싸우며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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