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 서예’로 진화하는 한국서예, 고리타분하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30일 유튜브 채널(youtube.com/MMCA Korea)로 개막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은 현대미술사에 기록될 기획전이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온라인으로 먼저 개막한 첫 사례이고, 특히 서예가 단독 기획전으로 마련된 것은 1969년 개관 이래 최초다. 

코로나19 여파…온라인 선개막
MMCA의 첫 서예 단독 기획전
 

1000년이 훌쩍 넘는 한국 서예사 속에 서예가와 더불어 500만여명에 이른다는 서예 인구에도 불구, 상징적 공간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첫 기획전이란 사실에 놀랄 수 있다. 그동안 서예는 정체되고, 고리타분한 전통예술이란 대중적 인식이 강했다. 한국 서단의 분열, 동시대의 삶과 시대성을 담아내지 못한 게 큰 이유다. 또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선 미술에서 배제되고, 서예를 동아시아 전통과는 달리 예술로 인식하지 못한 서구 미술문화의 유입과 전통문화 홀대, 현대미술 관계자들의 무지·무관심 등으로 소외됐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서예진흥법’ 시행과 더불어 대규모 기획전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전시는 서예와 전각·회화·조각·도자·캘리그래피, 타이포그래피·미디어아트 등 300여 작품과 관련 자료를 통해 해방 이후 현대까지 근현대 서예의 발전과정, 미술에서 서예가 차지하는 의미·역할 등을 살펴본다. 과거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나아가 ‘느끼는 서예’로 진화 중인 한국 현대서예의 힘과 그 확장 가능성을 조명하는 기획전인 것이다. 

4부로 구성된 전시는 먼저 서예가 회화·조각 등에 끼친 영향을 통해 미술임을 보여준다. 동아시아 시각문화는 글씨와 그림의 근원이 같다는 서화동원(書畵同源), 시·서·화 일체라는 사상에 기반한다. 이 전통은 역사적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문인화·서체(필체)추상·문자추상 작품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이응노·김환기·장우성을 비롯해 이우환·오수환·황창배 등의 회화, 김종영·최만린의 조각은 서예를 바탕으로 한 독창적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전시기획자 배원정 학예사는 “서예와 미술의 관계는 프랑스의 앵포르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일본의 전위서의 영향 속에서 주로 논의돼 왔다”며 “이젠 해방 후 민족미술 부흥, 한국적 모더니즘 창출의 한 방편이라는 틀로 서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 후기 이후 단절·왜곡된 서예는 해방 후 근현대 서예로 새 기틀을 잡아간다. 소전 손재형은 일제의 ‘서도’를 탈피하고, “우리 미술문화를 바로잡고 서예문화를 새롭게 전개하자”며 ‘서예(書藝)’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중국의 ‘서법(書法)’, 일본 ‘서도(書道)’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선전에서 배제됐던 서예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한 부문으로 포함되기도 했다.

‘국전 1세대’ 12명 조형어법부터
2세대의 실험적·파격적 작품도
캘리그래피 등 확장 가능성 엿봐
 

전시회에서는 ‘한국 현대서예가 1세대’ ‘국전 1세대’라 할 12명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예·해·행·초서의 오체를 터득하고 서예의 현대화, 예술세계 구축에 나선 이들이다. 특히 한자에 비해 조형미를 드러내기 어려운 한글서예를 각자의 조형어법으로 찾아내기도 했다. 

조형미를 강조한 한글·한문의 ‘소전체’를 탄생시키고 김정희의 ‘세한도’를 환수한 일화로도 유명한 손재형, 제주도 대표 서예가이자 자유분방하고 현대적 미감이 두드러지는 소암 현중화, 성경책·간판 글씨로 대중적으로 이름난 ‘원곡체’의 원곡 김기승, 서양화에서 서예로 전향해 “하나도 같은 글씨가 없다”는 평을 듣고 오른손이 마비되자 왼손으로 서예 인생을 펼친 검여 유희강이다. 또 ‘마지막 선비화가’로 불리는 강암 송성용, 한글궁체의 토대를 다진 여성 서예가·교육자로 ‘갈물한글서회’를 창설해 지금도 후학들이 활동 중인 갈물 이철경, 서예행정가로 서단에 영향을 준 시암 배길기, ‘평보체’를 이룬 평보 서희환도 있다. 이어 한글·한문 혼용을 주장하며 ‘일중체’를 구축한 일중 김충현과 그 동생으로 ‘훈민정음체’ 등을 창안한 여초 김응현 작품도 나온다.

조형미가 강조된 소전의 글씨를 비판한 여초는 서예평론을 개척하고, 일중과 함께 국내 최초의 서예연구단체 동방연서회를 통한 서예교육에도 앞장섰다. 석봉 고봉주, 철농 이기우는 서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각의 대가들이기도 하다. 

2세대 현대서예가들은 실험적·파격적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도구와 재료의 확장은 물론 평면과 입체·설치·퍼포먼스·영상 등을 통해 문자 이외의 소재들도 도입한다. 자신만의 독창적 표현에 주목하고, 자유분방한 필획으로 타 장르와 소통·융합하며 예술적 생명력을 높이고 있다. 권창륜·이돈흥·박원규·황석봉·여태명·최민렬 등의 작품을 통해 서예의 다양화, 개성화, 예술적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은 신영복 ·안상수·강병인·이상현·이일구·김종건 등의 작품을 통해 최근 주목을 받는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 영상 캘리그래피 등으로 서예의 확장 가능성을 엿본다. 

전시와 연계해 출간된 도록은 풍성한 논고·서예비평 등으로 서예 애호가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만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5일까지 휴관하며,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덕수궁관 전시장의 문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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