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김제동의 똑똑똑(25)] 신영복 성공회大 석좌교수

정리 | 박경은 기자 김제동 “선생님. 저 토크 콘서트 하면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과 비유를 허락도 안 받고 슬쩍슬쩍 인용해요.” 신영복 “저야 그러면 고맙죠.” 김제동 “특히 기억나는 게 윗집에서 아이가 뛰면, 올라가서 그 아이 얼굴을 보면서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주라고 하셨잖아요. 아는 아이가 뛰면 덜 시끄럽다고.” 신영복 “서로 알아야 저쪽의 언어로 우리 정서를 표현해 줄 수 있어요. 그게 소통입니다.” 권호욱 선임기자 "좁은 독방에 해가 삐뚤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점 하나 찍어놓은 크기였지만 그것이 점점 커지기 시작해 나중엔 신문지 크기로 커진다. 신문지크기만 한 햇빛을 맞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시간 정도다. 그러나 이 한 점의 햇살만으로도, 그 햇빛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게 손해는 아니다. 그 햇살이 없었으면 나도 숨을 끊었을지 모른다.” 수년 전 신영복 선생의 강연회에서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정수리에서 뭔가가 자르르 흘러내렸다. 당시 선생의 말씀은 나에게 당신을 살아가게 했던 ‘신문지만 한 크기의 햇살’ 이상이었다. 선생은 나에게 시대를 살아가는 힘이었고, 삶을 견뎌내는 원동력이었다. 아니 선생은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큰 선물이다. 공부라면 담쌓고 살던 내가 2년 전 큰 맘먹고 성공회대에 편입한 것도 순전히 선생 때문이었다. 물론 권총(F학점)을 수십개 차서, 얼마를 더 다녀야 할지 모르겠지만. 뭐 대수인가? 난 전문대도 11년이나 다녔는데…. 여하튼 막 봄이 움트는 교정에서 선생과 마주 앉았다. “좀 있다가 김창남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가 오신대요. 제동씨가 수강신청을 아직 안했다면서….” -헉, 사실 제가 요즘 이사 하느라고 좀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 안 그래도 이사한 집에 선생님 한 번 모셔야 하는데…. “방배동이랬죠? 그 집 ‘안가’라고 소문 나서 많이 모인다고 하던데요.” -많이 와요.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요. 와서 선생님 글씨를 훔쳐가니 문제죠. 예전엔 승엽이 사인볼 가져갔는데…. 값어치는 모르면서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인데 주로 길이나 하하, 그런 부류들이에요. 나는 2년째 선생님께 배우고 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나는 선생님과 함께 MT 갈 때가 참 좋다. 선생님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실 때는 가슴이 저릿저릿해진다. 노래도 정말 잘하신다. -선생님이 언젠가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하시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어요. “제가 노래 없이 20년 세월을 살았잖아요. 독방에서 지내며 허밍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꼭 짓궂게도 그 노래를 원해요. 더 이상 창살 아래 묶여 있기 싫은데….” -그런데 선생님이 독방에 계시던 그 20년 동안 감옥 안은 물론 밖에도 노래가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노래가 있어도 부를 수 없던 시절이었고. “그런가요? 그래도 출소해 보니까 많은 성과를 이룬 분야가 노래 아닌가 싶어요. 부지런히 배웠어요. 물론 앞으로도 더 배워야 하지만.” -요즘 노래는 좀 아세요? “못 따라가겠어요. 노래보다 춤이 우선인 것 같기도 하고, 가사를 들어보면 대부분 인간관계가 파탄된 것 같기도 해요. 뭐더라? ‘네가 떠나갔을 때 내가 울고 있을 줄 알았지? 착각하지 마.’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공감은 잘 안돼요.” -예전 노래에는 감정이입이 그대로 됐잖아요. “노래 없는 세월을 살면서 팝, 재즈 가사집만 봤어요. 비틀스 노래만 해도 엄청나잖아요. 변혁적이고 깊이도 있고요.” -비틀스의 ‘이메진’은 사실 혁명이죠. 정말 대단합니다. 난 성공회대 교수님끼리 만든 ‘더 숲 트리오’ 노래도 좋다. 열심히 하시고 음악적 수준도 높아 공연이 볼만하다. 게다가 멤버 전원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자기의 이유’ 찾아야 인간적 삶 살 수 있어” “비인간적이고 패륜적인 톱니바퀴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지만, 두렵기도 하고 방법도 모르겠어요.” - 김제동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면서 나는 이런 세월을 견디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20년 하고도 20일, 억울하고 분하지 않으셨나요? “그런 질문도 들어봤죠. 그런데 어느 시대나 역사적 격랑 속에 희생된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지금도 이집트, 리비아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지요. 크게 보면 민족의 운명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 특정인에 대한 분노는 온당치 않아요. 20년을 견디는 힘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도 술회하지요. 뭔가를 깨닫는 삶은 견디기 쉬워요. 감옥에서 보면 나가는 날만 기다리는 단기수들이 더 괴로워했어요. 나 같은 무기수는 시간이 지난다고 빨리 나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었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뭔가에 자꾸 도달하려고 하는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거죠.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싶어요.” -지금 세상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세계 모든 질서가 그렇죠.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있고 그 중하위권에 우리나라가 매달려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여기서 떨어지면 우리 삶이 정지되는 구조 속에 살고 있어요. 구제역에 걸린 가축이 산 채로 매몰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다른 인간적인 가치와 가능성도 매몰되고 있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이럴수록 우리 시대를 짓누르는, 빨리 깨뜨려야 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배타적인 자기를 경쟁력 있게 만들려는 노력이지요. 지금 이 시대에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결국 물질적 성과를 획득하는 데 유능한 경쟁력입니다. 그런데 그게 현재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가 돼 있잖아요. 나라도 그런 포맷으로 만들고 있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진짜 소중한 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바꾸지 못할 뿐이죠.” -비인간적이고 패륜적인 톱니바퀴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지만, 용감하게 도로에서 기수를 틀어 차문을 열고 길 위에 서고 싶지만…. 두렵기도 하고 방법도 모르겠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중장기적인 정책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사실, 쉽지 않아요.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고민이 깊은 공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럼 가능성은 있죠.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사회 곳곳에 숲을 만들자는 거예요. 작은 숲을 만들어 우선 견디고, 다시 숲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가지 수준의 연대를 하면서 사회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어요. 여럿이 함께 가면 뒤에 길은 생겨나거든요. 우리 자신의 주체적 결정권 없이 뭔가 밖에서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 역사의 아픈 잔재예요. 함께 고민해서 함께 결정하면 됩니다.” -함께 뜻을 모아 가면 그 뒤가 길이라는 말씀이시네요. 역사의 결정권자 역시 언제나 민중이라는 것이고요. 그나저나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늘 직접적이거나 자극적인 단어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격한 말보다 훨씬 깊이 와 닿아요. “아녜요. 제동씨처럼 행간의 의미를 읽어주는 분이 많지 않아요. 전 제동씨의 그런 점이 돋보인다고 생각해요. 제동씨 <토크 콘서트> 가서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몰라요. 나는 학교 선생이라 개념적인 언어를 벗어나기 힘든데 제동씨는 내가 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토크 콘서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유, 선생님. 저는 개념적으로 고급 단어는 몰라서 못 쓰는 겁니다. 경향신문

상세정보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