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이 있었고,
그 밑으로 개울이 있었어요
그 밑으로 개울이 있었어요

구술자 : 최종철 (1931년생, 88세, 경기도 오산 출생)
- 채록일 : 2019년 7월 11일
- 채록장소 : 주안7동 경로당
- 채록자 : 이경희, 이명순, 조영숙
- 채록장소 : 주안7동 경로당
- 채록자 : 이경희, 이명순, 조영숙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최종철.
지금 연세가?
88세.
31년생이세요. 하시는 일은?
하는 일 없어요. 이제 나이 먹고 뭘 해요.
네~ 태어난 곳은 어디세요?
태어난 데는 평택군 오산원 서탄면이라고. 평택군과 화도군 경계.
지금 살고 계시는 곳이 어떻게 되세요? 혹시 주소는?
1342번지 26호.
얼마나 사셨어요?
1969년 5월 20일 이사 와서 계속 살았어요.
굉장히 오래 사셨네요? 50년이 넘었네요. 이곳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인하대 앞이 거기가 갯벌이었어요. 하꼬방도 잔뜩 지어서 살았어요. 거기가 철거가 되는 바람에 여기 이리로 나왔지. 토지금고 있지요? 거기가 다 뻘이었어요.
용현동에서 이곳으로 철거 나오신 분은 인터뷰 중에 처음이시네요. 처음 여기 오셨을 때, 집은 얼마나 했어요?
시에서 10평씩 불하를 받아서 살게 되었지. 여기는 중국 사람이 농사를 지었던 곳이었어요.
50년 살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겠어요?
참 많았지. 그런 거는 자세히 잘 모르고 새벽이면 일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사람이 동네일을 잘 알지는 못하지. 듣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먹고 살기도 바쁘고. 그때는 차도 없었어. 송도도 만석동도 다 걸어서 갔단 말이야.
그때 무슨 일 하셨어요?
건축일 했어.
건축 붐이 있었던 때라 바쁘셨겠어요. 기억을 떠올려서 신기시장에서 있었던 일 기억나는 거 있으세요?
특별한 건 잘 모르고. 여기 여자들이며 남자하고 진흥도자기 공장에 다니는 사람은 거기 다니고, 노동일 하는 사람은 거기 나가고. 우리 안식구도 도자기 공장에 새벽에 나가서 일했지.
자녀분들은?
아들 둘, 딸 둘. 큰 아들이 58살이고, 그 다음이 56살.
저희 또래네요. 저희가 63년생이거든요. 자녀분들이 학교를 다녔잖아요. 그죠?
여기서 자라 가지고 문학초등학교 다녔지.
여기서는 문학초등학교 다녔어요?
문학 다녔어요. 이건 나중에서야 생겼지.
문학초등학교 다니다가 주안초등학교로…….
아니. 거기서 졸업했어요.
나중에 나온 친구들이 주안초등학교로 다녔군요. 여기 그때, 신기시장 이쪽에 차가 안다녔었잖아요.
마을버스라고 하나, 몇 대 생겼어요. 시장 안에 주차장이 있었어요. 여기 순대골목 있죠? 전부 주차장 자리예요. 그때는?
그때 번호를 5번 달고 있었나요?
마을버슨데 몰라. 지금 같은 그런 게 아니고 차도 조그만 거였어. 거기 주차장에 그게 1시간에 한 번씩 다니거나 말거나 했어. 그것도 나중에 들어왔지. 여기 길이 없어서 나중에 들어왔지.
선생님이 여기 처음 이사 오셨을 때 그때 이쪽의 상황이 어떠셨어요? 아까 말씀하셨을 때는 69년도 5월에 처음 입주했고…….
여기 처음 나왔을 때, 두 군데서 나왔어요. 하인천 파가 있었고, 신흥동에서 나온 데가 있고. 저쪽 담길 저기 위에 6m 도로 있잖아요?
그러면은 지금 학익동 아파트, 여기 신동아 아파트 있는 데가 하인천에서 온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어요?
아니 신흥동에서 온 사람이 신동아. 그 아래쪽으로 하인천에서 나온 사람들이 있었지.
그럼, 도로 밑으로 여기는 용현동 토지금고 쪽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 신흥동. 거기는 신흥동에 들어가요.
아. 그러면 여기 일대에 밑으로 있었고. 나머지는?
나머지는 다 개인 개인이 들어와 집짓고 살았지.
그럼 여기 시장 건너편 도로 있잖아요. 시장 있고, 큰 도로 있잖아요.
거긴 다 논이었어.
그럼 거기 개인이 들어와서 집짓고 자리를 잡은 게 몇 년도였어요?
그때가 70년? 3~4년 됐을 거야. 우리 나오고 4~5년 있다가니까 73년 됐을 거야.
그때 큰 건물 기억나는 거 있으세요? 좋게 지은, 한 3층이나 4층이나.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다 주택으로 조그만 집들이고. 다 10평짜리 되고. 집도 조금 크게 지었다는 건, 여기 차 다니는 신일다방. 거기 2층. 그게 길 넓다고 지은 게 2층, 3층 그런 것들이지. 제일 높이 진 거는 저 쪽에… 지금 무슨 자리냐… 거기가 야채가게 지금 들어왔고, 옷가게 들어왔고. 거기가 제일 컸지.
그럼 거기가 시티은행 자리였던 데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기가 무슨 자린지… 여러 사람이 많이 와서 장사를 해서 뭐… 기억이 별로. 집에서 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노상 새벽이면 나가고 저녁에 들어오는 사람이… 자세히 알면… 그렇게 지었다는 것만 알지. 잘 몰라.
여기 도자기 공장에 사모님 다니실 때. 그때 도자기 공장 다니셨던 이야기 들으신 거 있으세요?
도자기 공장 이야기는 자세히 몰라요. 집에서 집사람하고 얘기를 많이, 남하고 말하는 거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냥 동네에서 당기는 사람들, 여기 동네에서는 아줌마들, 여자들이 많았지.
진흥농협에서 퇴근 시간 출근시간, 혹시 기억나세요?
아침 7시에 나가고. 저녁은, 오는 시간은 5시 반에 끝나는데 시간 일하고 나면 8시, 9시 이렇게 되는 것 같아.
그때는 3교대였었지요?
그때는 2교대 했었어요. 3교대한 건 자세히 잘 몰라.
오후 타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5시 반에?
오후에 들어간 사람이 새벽에 나왔지. 아침에 나간 사람이 저녁에 들어오면.
12시간 근무를…….
거기 12시간 근무를 했어요.
그 때 일을 다니셔서 마을에 대한 기억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여기 살던 사람들의 삶의 질, 삶의 형편은 어떠셨던 거 같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몰라요.
사모님이 진흥요업에 일 다니실 때, 시장이 있었나요?
여기 시장 없었어요. 우리 나오고 3~4년 후에 생겼을 거예요.
새로운 사람이 집 짓고 그러면서 시장이 만들어졌어요? 여기 신기시장 주변에서 사실 때 추억거리 있을까요?
추억거리 그런 건 잘 모르고. 여기 길 있는데 하꼬방이 있었고, 우물이 있었고.
우물이 어디 있었어요?
요기 나가면 다음다음에 도로가 있었어요. 우물이 여기 올라가면 버스 서는데 있죠? 거기 근방에 우물이 있었어요. 버스 서는데 또 개울이 있었어요. 우물이 있었고, 그 밑으로 개울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주차장 바로 앞에가 거기가 또랑이 있어요. 지금도 거기 있는지 몰라요.
지금은 다 메어서 보이지를 않고.
길은 다 논자리고.
여기 양계장이 하나 있었잖아요?
양계장은 저 밑에 가 있었지.
지금 커다란 건물. 뾰족한 건물 만들어져 있는데, 그 근처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거기도 우물이 있었어요. 거기 10m 도로 있죠? 도로 옆에가 하나 있었어요. 깊은…….
거기 우물을 퍼 다가 식수로 썼나요?
그거 식수로 먹고 여기로도 식수 먹고. 우진아파트 앞에 지금 목욕탕 자리가 중국집 자리인데 거기도 우물이 있었어요.
우진아파트 앞에 지금 새로 건물이 지어졌는데 거기도 우물이 있었어요?
지금 목욕탕이 있잖아요. 목욕탕 자리는 중국사람 집이고, 우물도 거기 중국 우물 하나 있어요. 우리네가 더운 거 같다 그러면 여름에 수박 하나 사면 거기다 넣었다가 건져다 먹고 그랬어요.
양계장 위쪽 동네에 중국 사람이 마 농사짓고, 당근 농사짓고 그랬잖아요.
그 자리가 어디냐 하면 목욕탕 밑으로 쭉 내려가면서 다 중국 밭이에요.
거기도 우물이 하나 있었지요?
우물이 중국사람 집, 목욕탕 자리에 있었다니까. 10m도로 중간에 하나 있고.
우진아파트라고 했나요?
우진아파트 앞에 목욕탕 있어요. 그 자리가 우물.
여기가 많이 변했지요? 지금 필요한 거나 바뀌어야 할 게 있을까요?
그런 건 없어요. 우리 사는 거 외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혹시 옛날 사진 있으세요?
없어요. 있긴 했는데 못 쓰는지 알고 애들이 다 버렸어.
그때는 그게 추억이긴 하는데 귀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런 자료들도 필요하더라고요. 경희쌤 여쭤볼게 있어요? 혹시, 여기 오래 사신 분들 중에 70대 중후반이나 80대 초반이나 소개해주실 분 있으세요?
없어요. 여기 지금은 내가 알기로는 제일 오래 살았던 사람이 한 80, 몇 년도 나온 사람이 몇 사람 있는데 사람이 다 바뀌었어요. 팔고 이사 가고, 또 다른 사람 팔고 이사 가고… 우리 집만 남았지. 사람들이 몇 번씩 다 바뀌었어.
선생님 집도 수리하셨지요?
수리 몇 번 했지. 살다가 조금 나쁘면 다시 고치고. 나중엔 몇 해 살다가 위에 슬라브 치고 담 하나 들였지.
2층으로 올리신 거지요? 처음에 오셨을 때에는, 1층이었을 때 이 동네 지붕이 어땠어요?
전부 슬레이트였지. 슬레이트 아니면 루핑 검은 거 있잖아. 그런 거 아니면 슬레이트지. 뭐. 다. 우리도 아직 슬레이트야.
슬레이트나 루핑 지붕 했을 때, 비 오고 그럴 때 소리 들으면...
세진 않았어. 소린 나지만… 우린 2층 지어왔으니까 소리 못 듣지. 방 하나만 들였지. 옥상 바닥을 장독대 넣느라고 방 하나만 들였어.
다른 분들도 그렇게 지었어요?
그렇게 지은 사람도 있고. 안올리고 그런 사람도 있고. 2층 짓고서 슬레이트 덮은 사람도 있고 대중없어요.
그때는 집도 따닥따닥 붙어 있었죠?
지금이나 그때나 10평씩 잘라서 줬다고. 그리고 다 한 자 이상 떨어져 있어요. 공간이 한 자 이상 떨어져 있어요.
밖에서 보면 다 붙어 있는 거 같아서요.
다 떨어져 있어요.
현득수 선생님에 대해서 들은 기억 있으세요? 마을에서 새마을 이사장도 하고…….
그 양반이 양계장 했어요. 마을금고 생기는 바람에 이사장 하다가 이사장 2대인가 하다가 다음에 다른 사람이 하고… 그 양반 돌아가신 지도 몰라. 나보다 4살인가 5살인가 위예요.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 아파트가 어디냐면 터널 가는데, 순복음교회(구월동) 가는데 아파트인가 사신다던데.
이렇게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을 좀 찍고 마무리할게요. 자료가 나오면 선생님께 보여드릴 거예요. 잘못된 점은 잘못되었다. 말씀해주세요. 고쳤으면 좋겠다 하시는 것도 그때 말씀해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